[9월] 음악탐구

조곡, 통일성과 다양성을 비교해 듣는 감칠맛
-귀가 트이는 클래식 中-

무용곡에서 출발한 조곡 양식

조곡은 몇 개의 단일 작품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위로 서로 결합되어 이루어진 음악작품을 말한다. 조곡의 참된 맛은 그들이 전후 관계의 연결 속에 함께 연주될 때 비로소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조곡은 보통 가벼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처음 클래식에 접하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듣기에 어려움이 없다. 전체 작품의 길이는 다소 길어도 하나하나 간단한 작품의 단위로 끊어져 있어 지루함을 덜어 주면서도 별 어려움 없이 소나타나 중주곡, 교향곡과 같이 거대한 작품의 감상으로 옮겨가는 데 교량 역할을 한다.

조곡의 시초는 무용곡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잘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바흐가 건반 악기를 위해 작곡한 <영국 조곡>, <프랑스 조곡>을 들 수 있다. <영국 조곡>이나 <프랑스 조곡>을 듣는 사람들은 각 작품마다 ‘알르망드’, ‘사라반드’, ‘쿠랑트’, ‘지그’와 같은 이름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여러 나라에서 수입한 춤곡인데 바흐 시대에 와서 모음곡 형식에 편입하여, 춤추기보다는 듣기 위해 연주되는 감상용 음악으로 전환하게 된다.

감상자 중에는 ‘사라반드’나 ‘지그’와 같이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음악이 어떤 이유에서 하나의 작품 안에서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 네 개의 춤곡들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것으로, 각각의 낱말이 암시하듯 알르망드는 독일, 쿠랑트는 프랑스, 사라반드는 스페인, 지그는 영국 계통의 무용곡이다.

이 때문에 각각의 춤곡들은 리듬의 움직임이나 빠르기에 있어서도 독특한 개성을 보여 준다. 언뜻 보면, 단지 춤곡이라는 것 이외에는 이들을 하나로 연결 지어 모아 놓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각 악곡의 조성과 형식을 통일시킴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는 바로크 시대 특유의 ‘단일 주제에 의한 단일 감정의 추구’라는 개념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바흐 조곡에서 살펴 보는 바로크 시대의 춤곡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반드’, ‘지그’는 바로크 시대의 모음곡에서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춤곡들이며, 여기에 ‘부레’나 ‘가보트’, ‘미뉴엣’ 등이 첨가되거나 대체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YIVDrPXpL8&feature=youtu.be

- 바흐 <영국 조곡>

이 같은 모음곡들은 무용곡의 성격을 지니지 않은 전주 악장을 포함하는 것이 보통이다. 바흐 시대에 이르러 전주곡들은 단순히 도입 기능을 위한 전주부의 역할을 넘어 하나의 독립된 악곡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들은 특히 그 길이에 있어서나 음악적 가치에 있어서 빼어난 전주곡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은 그 전형적인 예로, 이 작품의 전주곡은 다른 악장들에 비해 가장 길고도 중후한 감을 주고 있다. 바흐는 이 전주곡의 중간 부분에 다음과 같이 생기발랄한 푸가토를 집어넣어 육중한 맛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있다.

바흐
[악보 1] 바흐 <관현악 모음곡> 제3번 중 ‘전주곡’

이 선율은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시대의 선율들과는 달리 휴지부가 없고 대신 실을 길게 늘이듯 같은 음형을 연속하여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제2곡 아리아의 선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곡은 보통 ‘G선상의 아리아’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G선상
[악보 2] 바흐 <G선상의 아리아>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은 전주곡―아리아―가보트―부레―지그의 다섯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지그를 제외하면 바로크 시대의 전형적인 모음곡 구성과는 다르다.

무용곡의 범주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으로 전환

바로크 시대를 지나면서 조곡은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에서도 볼 수 있듯이 18세기나 19세기의 작곡가들은 2부·3부의 가곡 형식뿐 아니라 론도 형식, 변주곡 형식 등을 사용하여 모음곡을 만들었다. 모음곡은 ‘파르티타’, ‘디베르티멘토’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모차르트가 작곡한<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 같은 작품들은 춤곡처럼 리듬의 율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무용곡이 지닌 가벼운 여흥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사실 모차르트는 이런 작품들을 귀족들의 담화나 카드놀이의 여흥을 돋우기 위해 가벼운 기분으로 단숨에 만들어 내곤 했다. 모차르트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를 쓰는 데는 단 하루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의 첫 부분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 있는 바흐의 선율과 비교해 보면 바로크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의 선율 구성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소리들은 바흐의 음악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개씩 음군을 이루며 엮어져 나가고 있다.

아이네클라이네
[악보 3]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https://www.youtube.com/watch?v=_KulQD0IsH0&feature=youtu.be

이 곡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악장은 바로크 시대의 모음곡과 비슷하게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이 서로 교체하며 대조를 이룬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의 첫 악장은 빠른 알레그로―소나타 형식이고 두 번째는 느리고 서정적인 로만짜, 세 번째 악장은 약간 빠른 미뉴에트, 그리고 마지막 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빠르고 활기찬 구조를 보여 준다.

슈만의 조곡 <카니발>은 낭만주의 시대의 모음곡으로 각 악곡의 선율들을 서로 교묘히 연결시켜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낸다. 슈만이 작품 전체에 통일감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한 방식은 단일한 선율 재료를 여러 가지로 변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이 추구하던 정신의 일면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영감에 근거하여 작품을 구성하는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창작태도는 그들로 하여금 소규모의 악곡에 전념하도록 만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o2aiKV-a0&feature=youtu.be

- 슈만 <카니발>

3
[악보 4]

슈만은 <카니발>을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간단한 주제를 만들어 사용했다. 조곡 3번과 6번은 (a)주제의 리듬을 간단히 변화·연장시켜 악곡을 만들어 나간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카니발>을 들을 때, 다음 두 개의 주제가 어떻게 사용되며 전체 작품을 이루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심을 가져 보자.

이 모음곡은 모두 20개의 피아노 소품들로 묶여 있는데, 악곡마다 사육제의 가면들과 그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제목들이 붙어 있다.

두 개의 중심 소재로 이루어진 <셰에라자드>

러시아 국민악파의 한 사람으로 서양음악사의 한 조류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림스키코르사코프도 그의 유명한 교향 조곡 <셰에라자드>를 작곡하는데 다음과 같은 두 개의 큰 주제를 사용했다. 음악을 들으며 이 두 개의 주제가 전체 악곡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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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5]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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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5-1]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는 ‘천일야화’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천일야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여자의 정숙함을 믿지 않는 술탄 샤리아는 결혼 첫날밤에 신부를 죽이곤 했는데, 셰에라자드는 천 일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결국은 죽음을 모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예로든 주제들은 각각 ‘샤리아’와 ‘셰에라자드’를 나타낸다.

(a)는 술탄의 주제로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샤리아의 성격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b)의 선율은 셰에라자드를 나타낸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술탄의 주제를 거의 전체 오케스트라를 동원하여 연주하도록 기획한 반면, 셰에라자드의 주제는 하프와 바이올린 독주로 연주하게 하여 두 개 선율이 대조되도록 하였다.

셰에라자드의 선율은 또한 술탄의 주제와는 달리 선적인 움직임을 지니고 있어 여성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이 두 개의 중심 주제는 여러 가지 변형된 모습으로 작품 곳곳에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전체 악곡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작품은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지니는 색채적 효과를 잘 살린 것이 일품이다.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각 악기의 성질을 교묘히 배합하여 이끌어 낸 독특한 색깔의 음향은 그의 음악을 특유하게 만든다. 교향 조곡 <셰에라자드>는 그 동양적 신비감으로 인해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는 관현악기들을 적절히 사용하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적 재능 및 감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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