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음악 탐구

 슈만과 클라라

- CEO를 위한 클래식 작곡가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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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Schumann, 1810~1856          Clara Schumann, 1819~1896

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
제단에서 영원한 힘을 지닌 에로스의 찬란한 불꽃을 태운다.
- 에트빈 피셔

 

슈만이 공짜로 피아노를 연습한 방법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로이메라이’로 너무도 유명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이 학창 시절 한 친구와 프랑크푸르트에 여행을 갔는데, 돈이 없어 싸구려 여관에서 자고는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어느 악기상 앞을 지나갈 때 슈만은 갑자기 피아노가 치고 싶어서 그 악기점에 들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영국의 어떤 귀족의 부탁을 받고 피아노를 사러 온 사람입니다.”

당연히 악기점 주인은 슈만에게 피아노를 골라보라고 했고, 슈만은 서너 시간 손가락 훈련을 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슈만과 클라라, 돈보다 강한 사랑

1830년 20세의 슈만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감격한 나머지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모친의 승낙을 얻어 독일의 정상급 피아노 교육자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 1785~1873)의 지도를 받아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슈만이 청년 피아니스트였을 무렵, 비크의 딸 클라라(Clara Wieck, 1819~1896)는 아홉 살 아래의 소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슈만은 손가락을 다쳐 연주자에서 작곡가로 전환하고는, 클라라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을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차츰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슈만의 스승이자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결코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습니다.

클라라가 20세가 되던 해인 1840년 두 사람은 결혼 허가를 요청하는 소송을 법원에 신청했습니다. 법원은 이들의 결혼을 합법화했습니다. 화가 난 클라라의 아버지는 심지어 딸에게서 상속권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R.Schumann – Widmung <Myrthen, Op.25, No.1>

 

바그너와 슈만

리하르트 바그너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반면, 로베르트 슈만은 매우 과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슈만은 바그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그너는 참으로 훌륭한 음악가인데다 위트가 있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말을 계속하지요. 정말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사람이 항상 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반면에 바그너는 슈만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그와는 도무지 의사소통이 안 돼요. 내가 파리에 갔다 왔을 때 그에게 들러 내가 파리에서 겪은 일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데 그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는 거예요. 정말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에요. 사람이 침묵만 하고는 살 수 없잖아요?”

이런 비슷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슈만이 라이프치히의 어느 술집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기쁘게 악수한 그들은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마주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대화를 위해 친구가 몇 번 시도를 했으나 슈만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헤어질 때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에 우리 꼭 다시 만나서 오늘처럼 이렇게 서로 실컷 침묵하자구!”

 

R.Schumann – Piano Concerto in A minor, Op.54

 

슈만을 앗아간 유전병

슈만의 부친 쪽으로는 유전적으로 정신질환이 있어서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사망한 데 이어 누이도 19세 때 자살했으며 슈만 역시 최후를 정신병원에서 맞이했습니다. 슈만을 괴롭혔던 환청, 환각, 망상 등의 이상체질과 격정에 빠지기 쉬운 과민한 기질이 오히려 변화와 다양성, 때로는 역설을 특징으로 하는 낭만주의적 예술 표현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런 질병이 그가 남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든 간에, 한 인간에게는 불행을 안겨주는 비극이었습니다.

슈만의 부친은 서점을 경영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8세 때부터 음악을 배웠고 9세 때부터 작곡을 했으며 14세 때는 꽤 솜씨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풍부하게 한 덕분인지 슈만은 나중에 문필가로서도 일가를 이루게 됩니다. 23세 때 『음악신보』라는 음악평론지를 창간하고는,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가지 필명으로 날카로운 음악평론을 펴는 한편 새로운 음악가들을 발굴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쇼팽과 브람스를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슈만이었습니다.

슈만의 나이 43세 무렵부터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슈만은 언어 표현력이 떨어지더니 동작이 느려지고 때때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오케스트라나 코러스 단원들과 잦은 불화를 겪었습니다. 병세는 갈수록 심해져 라인 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했습니다. 1856년 슈만은 결국 정신병원에서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슈만의 작품은 고전주의 작곡가처럼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있는데, 그중에서도 질적으로 가장 뛰어나고 작품 수가 많은 분야가 피아노 독주곡과 가곡입니다. 이 가운데 3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시적 서정성이 담긴 낭만주의 향기가 풍기는 표제적(標題的) 음악입니다. 특히 가곡은 슈베르트가 개척한 리트 형식을 계승하고 거기에다 시와 음악을 밀착시켜 보다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오페라 「제노베나 Genovena」(1848), 교향곡 제1번 ‘봄’(1841), 교향곡 제3번 ‘라인’(1850), 피아노 협주곡(1845), 「사육제」(1835), 「어린이 정경」(1838), 가곡 「유랑의 무리」(1840) 등이 있습니다.

 

R.Schumann Cello Concerto in A minor, Op.129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 우정(?)의 편지

클라라 슈만은 슈만의 충실한 아내이자 여섯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재능이 풍부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1853년 2월, 슈만이 라인 강에 투신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청년이 바로 브람스였습니다. 브람스는 깊은 상처를 받은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도와 절망에서 그녀를 구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이게 됩니다.

6명의 아이들을 안고 7번째의 아이를 임신한 클라라 부인을 위로하기 위해 브람스는 자신이 새로 작곡한 피아노 삼중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클라라에게서 막내아들이 태어나자 그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슈만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했습니다.

슈만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시작된 클라라에 대한 브람스의 마음은 차츰 짙어만 갔습니다. 1855년 가을, 클라라, 요아힘, 브람스 등 세 사람의 합동연주회를 각지에서 개최하여 슈만 일가의 생계를 돕기도 한 브람스는 당시 클라라보다 열네 살 연하인 스물두 살의 청년이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에 서신왕래가 시작됩니다. 그후 40년에 걸쳐 음악사상 보기 드문 우정의 편지가 오고갔습니다. 편지에서의 호칭은 ‘경애하는 부인’에서 ‘나의 클라라에게’, 경칭의 ‘부인(Sie)’에서 친밀한 표현인 ‘당신(Du)’으로 변화해 가지만, 또한 ‘사랑하는 친구여’라는 우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애처롭게 스며 있습니다.

두 사람의 편지들에서 드러나는 것은 현실세계 속에서 클라라를 연모하는 브람스와 현실도피 차원에서 브람스를 생각하는 클라라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R.Schumann - (cello) Träumerei, "Kinderszenen" No. 7, Scenes from Childhood

R.Schumann - (piano) Träumerei, "Kinderszenen" No. 7, Scenes from Child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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