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음악 탐구

천사 같은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
- CEO를 위한 클래식 작곡가 에피소드


César Franck,
1822~1890

프랑스의 교향음악 예술은 세자르 프랑크와 그 일파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 반상 댕디

 

  • 고지식한 아버지

 

19세기 후반 위대한 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곡가 겸 오르가니스트 세자르 프랑크(Cesar Franck, 1822~1890)는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12세에 일찌감치 리에주 음악원을 졸업하고 연주여행을 다녔을 정도로 조숙했으므로, 세자르의 부친은 아들이 쇼팽이나 리스트처럼 피아니스트가 되어 세상에 이름을 날리기를 바랐습니다.

 

1837년 세자르는 15세의 나이로 파리음악원(Conservatoire de Paris)에 입학하여 푸가, 대위법, 그리고 작곡을 배웠고, 오르간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당시 파리음악원은 작곡 콩쿠르를 매년 개최했는데, 두 개의 주제를 시험문제로 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소나타 형식이고, 두 번째 주제는 푸가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이었는데, 같은 음악원의 재학생인 세자르 프랑크는 두 주제를 모두 멋지게 치고는, 이어 두 주제를 합쳐서 푸가를 한 곡 더 만들어 쳤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세자르의 재능을 인정하여 1등상을 주었는데, 세자르의 아버지는 그것이 규칙 위반이라며 아들을 퇴학시키고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속내는 부친의 기대와는 달리 세자르가 피아니스트가 아닌 작곡가로 인생의 행로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César Franck - Pièce Héroïque


  • 프랑스 오르간 악파를 지킨 프랑크

 

프랑크가 활동했던 19세기 중후반의 파리음악계는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들끓던 시대로서 과시적이고 과장된 종류의 음악들이 득세하고 있어서,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예술적으로 진지하고 높은 경지에 도달하리라고 아무도 생각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프랑크는 베토벤과 바흐의 음악정신, 리스트와 바그너의 음악어법을 모두 소화하고, 탄탄한 구조 속에 대담하고 신선한 오르간 음악을 정립하여, 19세기 후반의 음악사에서 커다란 비중과 의미를 차지하는 프랑스의 오르간 악파를 지켰습니다.

 

1860년대 프랑크가 본격적으로 작곡한 6개의 오르간 작품을 들은 리스트는 그것을 “바흐 이후 최고의 오르간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음악평론가들은 리스트의 오르간 음악에서 “피아니스트 리스트”를 본다면 프랑크의 오르간 작품에서는 “심포니스트 프랑크”를 본다고 평했습니다.

César Franck -Final in B flat Major

 

  • 프랑스 음악의 아버지

세자르 프랑크는 ‘프랑스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가졌지만 사실 이것은 그가 죽고 난 뒤에 제자들이 붙인 것입니다. 1890년 프랑크가 현악 사중주를 초연하고 나서 청중이 환호하자, 프랑크는 “이제 겨우 나를 알아보는군”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프랑크는 그로부터 3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시대의 많은 음악인들과 제자들에게 각인된 프랑크의 인간성은 겸손하고, 간소하며, 예의바르고, 부지런하며, 결코 경박하지 않게 타인을 배려하는 천상의 인간성이어서, 별명이 ‘천사 같은 아버지 Pater Seraphicus’였습니다.

César Franck- Choral No. 2 in b minor

 

  • 자동차 사고를 주의하세요

세자르 프랑크는 제자의 집으로 가던 길에 (당시는 자동차가 없었으므로) 합승 마차에 옆구리를 받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늑막염이 악화된 프랑크는 사고가 난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쇼숑(Ernest Chausson, 1855~1899)은 세자르 프랑크의 제자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던 중, 초기 모형의 자동차와 충돌하여 사망했습니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은 1932년 10월 어느 날 파리의 자택 바로 앞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처음엔 이가 몇 개 부러진 정도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머리에 타박상을 입어 이로 인해 뇌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5년 후 라벨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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