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음악 탐구

성자 같이 살다 간 브루크너 - ②

- CEO를 위한 클래식 작곡가 에피소드

 

Anton Josef Bruckner,

1824~1896

 

말러가 여전히 지속적으로 신을 찾고 있다면,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은 작곡가이다.

- 브루노 발터

 

 

  • 바그너와 브루크너

 

1863년 이전까지만 해도 브루크너는 능력은 있으나 특징이 없는 작곡가였습니다. 1863년 그는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듣게 되었고,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바그너의 천재성에 완전히 압도당해 자신도 교향곡 작곡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3개의 미사곡과 교향곡 제1번 다단조(1865~1866)를 쓰던 1860년대 중반에는 수많은 바그너 음악 연주에 참가했고, 또 이 거장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이 본격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1881~1883년 사이에 작곡한 교향곡 제7번이었습니다. 브루크너는 이미 60줄이었습니다. 이 곡을 작곡할 무렵 바그너는 건강이 악화되어 임종이 가까웠습니다. 평소 바그너를 존경했던 브루크너는 제2악장(아다지오)을 바그너를 위해 느리고 슬픈 느낌이 나도록 곡을 쓰고 있었는데, 브루크너가 제2악장의 클라이맥스, 즉 심벌즈를 치는 부분의 음표를 적을 때 바그너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1883년 2월 13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브루크너는 매우 슬펐을 것입니다.

 

그래서 브루크너는 자신의 작품에서 처음으로 바그너가 「니벨룽의 반지」에서 자주 사용했던 악기이자 바그너의 이름을 딴 악기인, 바그너 튜바(Wagner Tuba)를 악기 편성에 포함시켰습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에는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바그너 튜바를 비롯해 관악기의 중요성이 큽니다. 바그너와 그의 동시대 작곡가인 브루크너, 그리고 바그너의 제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외에는 튜바를 사용하는 작곡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튜바는 점차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정규 악기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바그너 튜바는 기다란 원형으로 만들어졌는데, 벨은 위쪽에 있고 약간 구부러지고 호른처럼 왼손으로 밸브를 조작합니다. 바그너 튜바는 바그너에 의해 처음에는 콘트라베이스 튜바로 명명되었다가, 후에 바그너의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Bruckner - Symphony No.7 (2nd movement)

 

  • 하느님을 사랑한 작곡가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은 1891년 67세에 시작했는데, 표제는 ‘사랑하는 하느님에게(To God The Beloved, Dem lieben Gott)’였습니다. 3악장까지 완료한 것은 1894년이었고 마지막 악장은 결국 건강 악화로 미완성인 채로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에 대한 봉헌을 끝내지 못한 채, 하기 좋은 말로 제9번의 덫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브루크너는 72세로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교향곡 제9번은 1903년 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브루크너는 하느님을 섬기며 구도자와도 같은 길을 선택한 작곡가였습니다. 그의 교향곡에는 오르간 파트가 없는데도 그 울림이 왠지 오르간처럼 들린다는 평을 받는데,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그의 음악에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배어 있습니다. 작곡가로서 브루크너의 명성이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나 지난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였습니다.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 교회의 오르간 아래 그의 무덤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브루크너는 여기서 합창단원으로, 나중에는 오르가니스트로 일했고, 이 오르간 아래에 묻혔다.”

 

Bruckner - Symphony No.9

 

  • 에피소드 1

 

브루크너는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틈이 없다. 지금은 교향곡 제4번을 작곡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여유가 없다.”

 

 

  • 에피소드 2

 

빈 음악원 교수로 재직할 때 브루크너는 불협화음(Dissonance)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믿음은 정원(庭園)이다. 틀림없이 하나의 정원이다. 협화음(Consonance)은 그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이다. 그런데 정원에 갑자기 염소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하자. 그 경우 정원사는 틀림없이 막대기를 들고 그 염소의 머리를 때릴 것이다. 그때 정원에서 들리는 소리가 바로 불협화음이다. 알겠나?”

 

  • 에피소드 3

 

뮌헨의 어느 비평가가 브루크너의 한 관현악 연주를 듣고 다음과 같이 비평했습니다.

“브루크너의 작품은 괜찮은데, 너무 길어.”

이에 대해 브루크너를 좋아했던 막스 레거(Max Reger, 1873~1916)는 역으로 대꾸했습니다.

“브루크너가 너무 긴 것이 아니라, 당신의 비평이 너무 짧소!”

 

 

  • 에피소드 4 ‘아다지오 콤포니스트’

 

브루크너는 일생을 독신으로 보내면서 어린아이와도 같은 천진무구함으로 일관했습니다. 일상생활은 물질욕 없이 검소했고, 헐렁한 옷을 입고, 머리를 항상 짧게 깎고 다녔으며, 시골 사투리를 썼고, 아는 것이 많은 도시인들을 항상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교향곡도 대체로 제1악장에서부터 규모가 크고 장중하지만, 느리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브루크너에게 사람들은 ‘아다지오 콤포니스트(느릿느릿한 작곡가)’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이유는 소년 시절 사랑했던 소녀를 잊지 못해서였다고 합니다(정말 소년 시절을 잘 보내야 합니다). 그는 빈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유언대로 장크트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간 밑에 누워 있습니다.

 

Bruckner - "Adagio" from the String Quintet in F Major (arr. for String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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